이글은 등업기념글 입니다~^^
고등어 굽는 저녁, 그리고 어머니의 시간
어린 시절 우리 집 저녁은 늘 어머니의 손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해 질 녘, 마당 한구석 소죽 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온 동네 아이들에게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하루 종일 친구들과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놀던 나는 그 몽글몽글한 연기를 이정표 삼아 집으로 향했습니다.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것은 고소하게 퍼지는 고등어 굽는 냄새였습니다.
그 냄새는 단순한 허기를 채우는 음식의 향기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이 자리에 계신다는 안도감이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보금자리에 돌아왔음을 알려 주는 향기였습니다.
하지만 어린 제게 어머니는 그 저녁의 풍경처럼 늘 다정하고 따뜻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참으로 서먹하고 멀게 느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난히 이불에 지도를 자주 그리던 오줌싸개였던 저는, 아침마다 어머니의 불호령을 들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매몰차게 제 머리에 키를 씌우고는 이웃집에 가서 소금을 얻어 오라며 등을 떠밀곤 하셨습니다.
훌쩍이며 골목을 걸어갈 때면 머리에 쓴 키가 바람에 흔들렸고, 부끄러움과 서러움에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소금을 한 줌 얻어 쥐고 돌아오는 길, 아버지는 그런 저를 애써 다독여 주셨지만 어머니의 표정은 늘 엄격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저는 작은 실수에도 단호하게 키를 씌우던, 표현이 서툰 어머니를 가까이하기보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존재로만 여겼습니다.
어머니 곁에는 늘 작은 라디오가 있었습니다. 그 낡은 라디오는 고된 하루를 견디게 하는 어머니의 유일한 위로였습니다. 때로 그 소리는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낳기도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팍팍한 삶 속에서 어머니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작은 안식처였습니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시집와 평생을 시어머니와의 갈등 속에 갇혀 살아야 했던 어머니에게, 라디오 너머의 세상과 이따금 펼쳐 보시던 "여인열전" 같은 책들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유일한 창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미워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고단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자식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넬 여유조차 없으셨던 것입니다.
식구가 많았던 우리 집은 장터 생선장수들에게 늘 마지막 떨이 손님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장바구니에는 늘 억지로 떠맡겨지듯 남은 생선들이 담겼습니다. 시장에 가시는 어머니 뒤를 졸졸 따라가려 할 때면, 어머니는 짐짓 엄한 얼굴로 발치에 돌멩이를 던지며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그때는 매정하게 돌을 던지는 어머니가 야속하기만 했는데, 세월이 흘러 내 자식을 키우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 험하고 거친 장터 길에 어린 자식을 데려가지 않으려 했던, 어머니만의 서투르고도 애틋한 보호였던 것이지요.
몸이 부서질 듯 고단한 날에도 어머니는 설거지 한 번을 딸들에게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가족의 밥상을 차리고 그릇을 닦으며 당신의 손으로 하루의 마침표를 찍으셔야 직성이 풀리던 분이셨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에게 살며시 다가가면 피로에 절어 때로는 나를 밀쳐내시기도 하셨지만, 저는 어머니에게서 나던 그 짙은 땀 냄새마저도 참 좋았습니다.
자두가 먹고 싶다, 복숭아가 먹고 싶다 철없는 투정을 부리는 날이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보리쌀 한 됫박을 들고 장으로 향하셨습니다.
보리쌀과 계절 과일을 바꿔 돌아오시던 어머니의 발걸음. 당신에게는 사치였을 과일 한 조각이 자식에게는 커다란 행복이었던 그 시절, 서먹하다고만 여겼던 어머니의 삶은 사실 온전히 자식을 위해 내어주는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의 마지막은 너무도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언니에게서 친정으로 빨리 오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습니다. 운전대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며 달려갔습니다.
친정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저를 보자마자 변기에 앉혀 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마지막 힘을 다해 몸을 가누시는 어머니를 부축했고, 어머니의 마지막 변을 제 품에서 받아냈습니다.
그 순간, 무거운 돌덩이가 제게 온전히 기대어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인사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흉한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마지막 순간까지 애쓰셨던 어머니의 마음을, 그제야 온 살갗으로 느꼈습니다.
생전 어머니는 몸이 편찮으셔서 언니 차를 타고 병원에 가실 때면 혹여 요양원으로 보내질까 봐 불안해하시던 그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병원에서도 언니가 잠시만 보이지 않아도 줄곧 언니를 찾으셨습니다.
어릴 적 자주 아팠던 언니에게 귀한 계란찜을 해주시고 라면을 끓여주며 온 정성을 쏟으셨던 어머니에게, 언니는 그저 딸이 아니라 삶을 함께 버텨온 가장 큰 의지였던 것입니다.
이제는 세월에 밀려 그 시절의 부엌도, 낡은 라디오 소리도, 소죽 솥의 연기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기억 속 저녁 풍경은 여전히 선명합니다. 해 질 녘 피어오르던 연기, 대문을 열 때 풍기던 고소한 고등어 굽는 냄새, 그리고 오줌싸개 딸에게 키를 씌워 보내며 차마 다 보여주지 못했던 어머니의 속 깊은 애정까지.
세월을 지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고단하고 팍팍한 삶의 틈바구니에서도 늘 최선을 다해 우리를 사랑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제야 어머니가 손에서 놓지 않으시던 "여인열전"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그 책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젊은 날의 어머니를 버티게 해 준 작은 위로였을 것입니다.
그 저녁은 내게 한 끼의 식사가 아닙니다. 평생을 돌아가도 끝내 다다를 수 없는,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머물던 가장 찬란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이제 남은 생 동안 제가 품고 살아갈 기억이자, 끝내 다 전하지 못한 마음을 담은 뒤늦은 고해성사가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