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에 또 잠이 깼어요. 잠을 청해도 자꾸만 눈이 떠지는 밤이면 부엌으로 내려가 보리차를 데워 마셔요. 따뜻한 잔을 두 손에 감싸고 마시다 보면 그제야 좀 진정되는 느낌이 들어요.

이 나이에 오다 보니 깨닫는 게 많네요. 젊을 때는 뭔가를 계속 해야만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어요. 자꾸 채워야 하고, 성취해야 하고, 더 나아가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새벽에 혼자 보리차를 마시며 앉아 있으면서 깨달아요. 그게 다가 아니었구나 싶어요. 그냥 한 잔의 차를 마시면서 이 순간이 평온하다는 걸 아는 것도 살아가는 거네요.

남편이가 낮에 뭘 그렇게 자주 생각하느냐고 묻더라고요. 잠을 잘 자지도 못하면서 계속 생각만 한다고. 근데 이 나이대에는 그런 것도 자연스러운 거 같아요. 호르몬이 변하면서 몸도 달라지고, 마음도 다시 정렬되는 시간이 필요한 거겠죠. 모든 게 의미 있어 보였던 시절도 있었고, 이제는 정말 소중한 것만 보이는 시절이 오는 거고요.

새벽 시간에 깨어있다는 게 처음엔 고통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이게 내게 주어진 시간이라고 받아들이게 돼요. 남들은 모르는 이 시간 속에서, 나만 보이는 것들이 있거든요. 보리차 한 잔이 식어가는 과정도 그렇고, 창밖의 어둠도 그렇고. 너무 크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 말이에요.

오늘도 이렇게 밤이 깊어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