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적어둔 약속
— 폭락장에서 규칙을 지킨다는 것
코스피가 한 달도 안 되어 9천에서 6천대로 내려앉았다. 계단으로 올라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는 말이 시장에 돌았다. 서킷브레이커가 올해 들어 일곱 번째 울렸고, 하루에 9% 가까이 빠지는 날도 있었다. 이런 날 계좌를 열어보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요즘 계좌보다 먼저 열어보는 것이 따로 있다. 몇 달 전에 적어둔 한 페이지짜리 문서, 나의 투자 규칙이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채권의 비중은 일정하게 유지한다. 미국 장기채 금리가 6%대에 이르면 단기채를 팔아 장기채로 옮긴다. 코스피가 5천 밑으로 내려가면 주식을 추가로 산다. 그리고 7천대 중반부터는 조금씩 사 모은다. 문장은 짧고, 숫자는 구체적이다. 멋도 없고 통찰이라 부를 것도 없다. 그런데 폭락장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은 바로 이 멋없는 문장들이다.
예측하는 사람과 약속하는 사람
시장이 급락하면 두 종류의 목소리가 커진다. 바닥이라는 목소리와, 아직 멀었다는 목소리다. 둘 다 근거가 그럴듯하다. 선행 주가수익비율이 금융위기 수준까지 내려왔으니 바닥이라는 쪽도 옳아 보이고, 반도체 업황이 꺾이는 초입이니 멀었다는 쪽도 옳아 보인다. 나는 오랫동안 이 두 목소리 사이에서 서성이는 것이 투자인 줄 알았다. 더 많이 읽고 더 깊이 분석하면 어느 쪽이 옳은지 알아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00을 넘기고서야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시장을 예측할 수 없다. 전문가도 못 한다. 이번 폭락만 해도 뚜렷한 원인을 대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반도체 우려, 레버리지 청산, 외국인 매도, 얼어붙은 심리가 뒤엉킨 결과라고들 하지만, 그것은 설명이지 예측이 아니다. 설명은 언제나 사후에 온다.
예측을 포기하면 남는 것은 약속이다. 미래의 시장이 아니라 미래의 나 자신과 하는 약속. 시장이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시장이 어디에 왔을 때 내가 무엇을 할지는 정할 수 있다. 금리가 6%에 오면, 지수가 5천에 오면, 비중이 목표에서 벗어나면 — 조건은 시장이 채우고, 행동은 내가 채운다. 예측하는 사람은 시장과 싸우지만, 약속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하고만 싸우면 된다. 그리고 후자가 훨씬 이길 만한 싸움이다.
이자 붙는 실탄
지금 내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두꺼운 자리는 미국 단기채다. 화려한 자산이 아니다. 오르지도 않고 내리지도 않으면서 달러 이자만 또박또박 붙는다. 어떤 이는 그 돈으로 왜 더 공격적으로 움직이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것을 대기가 아니라 배치라고 생각한다.
단기채는 이자가 붙는 실탄이다. 주식이 더 내리면 주식을 사는 실탄이 되고, 장기금리가 더 오르면 장기채를 사는 실탄이 된다. 어느 쪽으로 튈지 모르는 시장 앞에서 양쪽 문을 다 열어두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밥값을 하는 자산. 젊어서는 이런 자산이 답답해 보였다. 지금은 이것이 자유라는 걸 안다. 현금성 자산의 진짜 수익률은 이자율이 아니라, 남들이 팔아야 할 때 살 수 있는 선택권의 값이다.
물론 대가는 있다. 금리가 꺾여 내려가면 단기채의 이자도 함께 내려가고, 그때쯤이면 장기채의 좋은 금리도 주식의 좋은 가격도 지나가 있을 것이다. 기다림에는 언제나 기회비용이 붙는다. 그래서 나는 극단의 트리거 하나에만 모든 것을 걸지 않고 구간을 나눈다. 7천대 중반부터 조금씩 사는 것도, 전환을 한 번에 하지 않으려는 것도 같은 이유다. 바닥과 천장은 지나고 나서야 이름이 붙는 법이니, 나는 이름 붙기 전의 구간을 여러 걸음으로 걷기로 했다.
리밸런싱이라는 자동장치
채권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첫 번째 규칙은 언뜻 가장 밋밋해 보이지만, 사실 가장 영리한 규칙이다. 주식이 폭락하면 계좌 안에서 주식의 몸집이 줄고 채권의 비중이 저절로 커진다. 비중을 되돌리려면 채권을 팔아 주식을 사야 한다. 반대로 주식이 급등하면 주식을 팔아 채권을 사야 한다. 규칙 하나가 나로 하여금 쌀 때 사고 비쌀 때 팔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제'라는 말이다. 폭락장 한복판에서 주식을 사는 일은 머리로는 쉬워도 손으로는 어렵다. 화면이 온통 파랗게 질린 날, 예탁금이 빠져나가고 거래대금이 말라가는 시장에서 매수 버튼을 누르는 손은 반드시 떨린다. 그 떨리는 손을 대신해 주는 것이 규칙이다. 용기가 아니라 절차로 사는 것. 나는 이제 내 배짱을 믿지 않는다. 00 넘게 살아보니 배짱은 필요한 순간에 꼭 자리를 비웠다. 절차는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
헤세가 가르쳐준 세 가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세 가지로 답한다. 생각하는 것, 기다리는 것, 굶는 것. 나는 이것이 투자자의 덕목이기도 하다고 오래 생각해왔다. 생각하는 것은 규칙을 만드는 일이고, 기다리는 것은 트리거가 올 때까지 견디는 일이며, 굶는 것은 트리거가 오지 않은 자리에서 행동하지 않는 절제다.
이번 폭락장은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시험한다. 생각은 이미 끝나 문서에 적혀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림과 절제다. 6%는 아직 오지 않았고 5천도 아직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와도 좋고 오지 않아도 좋다. 오면 약속대로 움직일 것이고, 오지 않으면 지금의 배치가 그대로 밥값을 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나는 시장에 무언가를 구걸하지 않는다. 이것이 규칙이 주는 평온이다.
숫자는 가장 정직한 문장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문장을 다듬는 일에 꽤 공을 들여왔다. 그런데 투자에서만큼은 가장 볼품없는 문장이 가장 힘이 세다. "장기채 금리 6% 도달 시 단기채 매도, 장기채 매수." 수사도 없고 여운도 없다. 그러나 이 문장은 해석의 여지가 없어서, 공포에 질린 나도 탐욕에 들뜬 나도 이 문장을 비틀 수 없다. 형용사가 많은 계획은 변명이 많은 계획이다. 숫자로 적힌 계획만이 미래의 나를 구속한다.
시장은 내년에도 오르고 내릴 것이다. 나는 그 방향을 모른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나는 몇 달 전의 내가 맑은 정신으로 적어둔 문장대로 움직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폭락장의 소란 속에서 그 한 페이지를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