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에 깬 밤이에요. 이 시간엔 낮에 못 본 것들이 보이네요. 지나가버린 사람들, 잊혀진 약속들, 언제부터인지 멀어진 관계들. 눈을 감으면 좋았던 시절들이 자꾸만 떠올라요. 그때는 몰랐어요. 그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를.
식은 보리차를 데우다 그냥 마셨어요. 새벽에 마시는 음료는 왜 이렇게 쓸하게 느껴질까요. 남편이 옆에서 자고 있는데도 혼자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에요. 우리가 함께 있어도 각자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거 같거든요.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서로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싶어요.
요즘 생각이 많아졌어요. 나이가 들면서 갱년기 마음이 깊어지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세상이 빨라지는 건지 모르겠어요. 어제가 그제 같고, 지난달이 지난해 같은 기분이라니까요. 다들 기준은 다르겠지만, 눈 감으면 지나갔던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와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던 것들도 이제는 흐릿해져 있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지나가는 게 나쁜 건 아닌가 싶어요. 지나가야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거니까. 모든 게 멈춰있다면 더 답답할 거 같아요. 이정도면 된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지나간 것들을 꼭 잡으려 하지 말고, 지금 이 밤을 마시는 게 맞는 것 같은 밤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