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에서 작은 소동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 방에서 조용히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거실에서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군요.

큰아들과 애 엄마였습니다.

나가 보니 식탁 위에 물휴지가 여러 장이나 구겨져 있었습니다.

아이가 늦게 들어와 밥을 먹으면서 손 닦고, 입 닦고, 식탁 닦고, 좀 많이 썼던 모양입니다.

"야, 물휴지 좀 아껴 써. 그게 한 장에 얼마짜린 줄 알아?"

"엄마, 이게 몇 푼이나 한다고 그래."

"몇 푼이든 그렇게 막 쓰는 게 문제라는 거지."

"아니, 우리 집 형편에 물휴지 몇 장이 문제가 돼? 이 정도는 써도 되잖아."

여기서 불이 붙었습니다.

아내는 "형편 얘기가 왜 나와"로 받았고, 아들은 "그럼 뭐가 문젠데"로 받았습니다.

물휴지 이야기가 어느새 버릇 이야기가 되고,

평상시 큰 아들이 마음에 안들던 행동에 대한 이야기,

나아가 누가 누굴 닮았냐는 이야기로 번지려던 참이었습니다.

저는 일단 둘을 떼어 놓았습니다.

"그만들 하자. 밥 먹다 말고 뭐 하는 거야."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나서 큰아들만 제 방으로 불렀습니다.

아이가 약간은 의기소침 해져서 방에 들어옵니다.

조용히 앉히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아까 네가 한 말 있지. 우리 집 형편에 그 정도는 괜찮지 않냐고."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지. 근데 아빠가 하나 얘기해 줄 게 있어.

아빠가 너만 할 때 얘기는 아니고, 그보다 훨씬 어릴 때 얘기야."

그리고 아이에게 제가 어머니와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용돈이 하루에 50원이었습니다.

국민학교도 입학하기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시절 아이스바 하나가 30원, 핫도그 하나가 30원쯤 했으니 지금 돈으로 치면 한 1,000원 정도 되는 돈이었지 싶습니다.

저는 그 50원을 단 하루도 남겨 본 적이 없습니다.

동네 가게에서 아이스바 하나를 사 먹고 나면 20원이 남는데, 그걸로 쫀드기를 사든 뽑기를 하든 어떻게든 다 쓰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다 가끔 친척 어른들이 집에 오시면 용돈을 주셨습니다.

100원, 200원. 그런 날은 노난 날이었지요.

아이스바를 두 개 먹고 핫도그까지 먹을 수 있는 날이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의 사촌 동생 되시는 분이 우리 집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가시면서 제 손에 쥐여 주신 돈이 1,000원이었습니다.

하루 용돈의 스무 배였습니다.

지금 느낌으로 치면 어린 아이 손에 5만원, 10만 원을 쥐여 준 셈입니다.

그날은 정말 원 없이 먹었습니다.

아이스바, 핫도그, 쫀드기, 라면땅, 음료수 등등 평소에 부러워만 하던 것들을 다 샀고, 친구들한테도 한턱 크게 냈습니다.

가게 아저씨가 "너 오늘 무슨 날이냐"고 물어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 그런 음식들이 몸에 좋은 음식들이었을리가 없지요.

그걸 하루에 몰아서 먹었으니 배가 배겨날 리가 없었지요.

그날 밤부터 배탈이 났습니다.

설사가 며칠을 갔습니다.

화장실에 들락거리고 병원에 가느라 학교도 하루 못 갔을 정도입니다.

그 좋아하던 아이스바는 한동안 쳐다보기도 싫었습니다.

1,000원을 손에 쥐었을 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부자였던 순간이었는데,

그 돈이 제게 남긴 건 며칠간의 설사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고생하고 나서 어머니가 저를 앉혀 놓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꾸중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돈에는 산 돈이 있고 죽은 돈이 있어.

산 돈은 네가 쓰고 나서 잘 썼다고 느낄 수 있는 돈이야.

죽은 돈은 쓰고 나면 지금처럼 도리어 너한테 해가 되는 돈이고.

앞으로 돈을 쓸 때는 이 돈이 산 돈인지 죽은 돈인지 꼭 한 번 생각하고 써."

여기까지 이야기하는 동안 아들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습니다. 저는 덧붙였습니다.

"솔직히 아빠가 그 뒤로 돈을 아끼는 사람이 됐냐 하면, 그건 아니야. 너도 알잖아. 아빠 절약하는 편 아니야."

"알죠."

"근데 한 가지는 남았어. 돈을 쓸 때 한 번 더 생각하는 버릇. 이게 산 돈인가, 죽은 돈인가. 그게 지금까지 와."

과장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도 돈을 쓸 때마다 거의 매번 이 질문을 합니다.

커피를 한 잔 사면서도, KTX를 타면서도, 주식을 한 주 사면서도. 이 돈은 산 돈일까, 죽은 돈일까?

쓰기 전에 한 번 멈추는 것, 그게 어머니가 제게 남겨 주신 습관입니다.

"그러니까 아까 물휴지 얘기도 그래. 엄마가 화난 건 물휴지 값 때문이 아니야. 그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그럼요?"

"그렇게 쓰는 돈이 죽은 돈이라서 그래. 쓰고 나서 남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아빠도 그래서 싫은 거야. 형편이 되냐 안 되냐의 문제가 아니라, 죽은 돈을 쓰는 게 싫은 거야."

아들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한마디를 더 보탰습니다.

큰아들은 지금 '모두의 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꼭 해 주고 싶었습니다.

"특히 네가 나중에 네 사업을 하게 되면 더 그래.

사업을 할 때에는 금액이 크든 작든, 단돈 천 원을 쓰더라도 이게 산 돈인지 죽은 돈인지는 꼭 생각했으면 좋겠어.

만약 사업할 때 쓰는 돈들이 죽은 돈들이 많으면 그게 가게든, 공장이든, 회사든 죽는거야. "

"...네."

아들은 꽤 오래 생각하는 눈치였습니다.

반항하던 기색은 없었고, 그렇다고 바로 수긍하는 얼굴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정도면 됐다 싶어서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큰아들이 동생이랑 배달 음식을 시키려고 이것 저것 고르다가 이런 말을 하는 게 들렸습니다.

"야, 이렇게 많이 시키면 이건 죽은 돈이야. 어차피 다 못 먹고 버려."

"뭔 소리야, 죽은 돈이 뭔데?"

"있어, 그런 게."

또 얼마 뒤 가족이 외식을 하는 자리에서도 메뉴판을 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