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유독 무언가를 ‘아끼는 것’에 미덕을 부여하는 사회에서 살아왔습니다. "나중을 위해 아껴야 한다"는 말은 시대를 관통하는 최고의 재테크이자 미덕이었습니다.
하지만 넘쳐나는 물화(物貨)의 시대인 오늘날, 이 미덕은 종종 기묘한 비극을 낳고는 합니다. 이른바 ‘아끼다 똥 된다’는 오랜 격언의 실현입니다. 집 안 구석구석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 격언의 증거들이 수두룩하게 쏟아집니다.
특별한 날에 입으려고 아껴둔 옷은 유행이 지나 옷장 천덕꾸러기가 되고, 아까워서 쓰지 못한 고급 화장품은 유통기한이 지나 쓰레기통으로 향합니다. 선물 받은 값비싼 와인은 정작 ‘그에 걸맞은 완벽한 날’을 기다리다 코르크가 썩어 시큼한 식초가 되어버리곤 하죠.
우리가 물건을 아끼는 이유는 그것을 사용할 ‘가장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완벽한 미래를 기다리는 동안, 물건의 가치는 서서히 소멸합니다.
결국 가장 좋은 것을 누려야 할 ‘현재의 나’에게는 늘 시시하고 낡은 것만 남겨지게 되는 셈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미래의 내 몫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나의 몫이어야 합니다.
이 현상은 비단 눈에 보이는 물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마음과 기회마저 지나치게 아끼다 잃어버리곤 합니다.
상대방에게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표현을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려다 영영 타이밍을 놓쳐버립니다. 마음은 아낀다고 저축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지 않으면 안에서 곪아 없어지는 인화성 물질에 가깝습니다.
완벽한 준비를 하겠다며 도전의 기회를 아끼고 미루는 사이, 세상은 저만치 흘러가고 기회의 문은 닫힙니다. 경험을 아끼려다 결국 아무런 서사도 쓰지 못한 채 제자리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의 본질은 무조건 펑펑 쓰고 낭비하라는 방탕함의 권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 ‘결핍의 시대’가 우리 무의식에 새겨놓은 ‘과도한 유예의 관성’을 깨뜨리라는 경종에 가깝습니다.
물건이든, 마음이든, 기회든 그것이 가장 빛나는 유통기한은 바로 '지금'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지금의 나에게 대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물건과 인생의 가치를 ‘똥’으로 만들지 않고 온전히 빛내게 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