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해병대 출신이십니다.

가을 추수가 끝난 텅 빈 들판, 어린 시절 보았던 그 기묘한 풍경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합니다.

늦가을의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치던 그날, 아버지는 친구분들과 함께 뱀을 굽고 계셨습니다.

친구분들은 살코기를 드셨지만, 아버지는 특유의 억센 손길로 뱀 껍데기를 나뭇가지에 돌돌 말아 씹고 계셨습니다.

어린 마음에는 그 모습이 낯설고 무섭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평생 거칠고 강인하게 세상의 풍파를 견뎌오신 아버지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해병대 시절의 강인한 기질이 몸에 밴 탓이었을까요.

아버지는 술을 즐기셨고, 그 일로 어머니와의 갈등도 잦았습니다.

조부모님께서 어렵게 얻으신 외동아들이었던 탓에, 자식에 대한 욕심과 애착은 남달랐습니다. 많은 형제 중에서도 저를 유독 아껴주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제가 입사 후 교육을 떠나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셨지만, 당시 저는 그 질문이 귀찮아 모른다고 무심하게 대답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부장님께 전해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제가 교육 장소조차 모른 채 떠난다고 생각하신 아버지가 회사로 직접 전화를 거셨던 겁니다.

"내 딸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교육을 받으러 간다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며, 부장님께 호되게 따져 물으셨다고 합니다.

"자네 아버지가 자식 욕심이 정말 대단하시더군."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그때는 창피한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저려왔습니다.

평소 거칠고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이면에는, 딸을 향한 투박하고도 깊은 사랑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제가 무심코 지나쳤던 아버지의 서툴고 과했던 표현들이, 사실은 당신만의 방식으로 저를 지키고 계셨던 흔적이었음을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어느덧 세월은 아버지를 구순의 문턱 너머까지 데려왔습니다.

예전 같지 않은 모습으로 앉아 계신 아버지를 뵐 때마다, 부모님의 시간은 우리보다 훨씬 더 빨리 흐른다는 사실이 가슴을 무겁게 누릅니다.

가까이 살고 있어 자주 뵙지만,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차려드리고 돌아오는 길이면 늘 아쉬움이 남습니다.

조금 더 잘해드릴 수 있었는데, 왜 그때는 그렇게 서툴기만 했을까. 후회와 그리움이 섞인 마음이 늘 저를 따라다닙니다.

제가 금융권에 처음 취업했을 때도, 아버지는 늘 같은 말씀을 하셨지요.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한다. 정직하게 살아라. 거짓말은 하지 마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그 말씀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밥상머리 가르침 덕분입니다.

이제야 그 투박했던 사랑과 가르침의 진정한 의미를 헤아립니다. 남은 시간 동안은 아버지께서 주셨던 그 깊은 사랑을, 제가 천천히 하나씩 되돌려 드리고 싶습니다.

매일 아침 같은 기도를 합니다.

아버지께서 건강하게 하루를 더 보내시기를, 그리고 제 마음을 전하기에 너무 늦지 않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