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졌다.
인대가 파열됐다.
3~6주 깁스가 필요하단다.
늙으면 잘 넘어진다더니,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실버타운 행사로
산티아고 순례길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다리를 접질렸다.
힘이 없던 다리였는데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에어캐스트 정말 편하겠어요.
제 깁스는 무거워요
산티아고는 원래 종교 순례길이었지만
이제는 장거리 트레킹의 한 문화가 되었다.
사람들은 더 먼 곳으로 떠난다.
오래 걷고, 고생하고,
극적인 경험을 찾아간다.
산티아고를 걸으면
자신을 만나고,
삶이 달라지고,
인생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산티아고를 두 번이나 걸었다는
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어디선가 이미 여러 번 들어본 말들이었다.
나는 이런 식의 깨달음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치 그 길을 걷지 않은 사람은
아직 삶을 모르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물론 산티아고를 걸으며
자신만의 답을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길을 걸었다는 사실이
삶의 깊이를 증명하는 것처럼 들릴 때면,
나는 조금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꼭 먼 나라의 길 위에서
극한상황으로 몰려야 할까.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야
삶의 진실이 보일까.
한 사람의 평범한 하루를
오래 들여다보는 일이
오히려 더 깊고 처절할 때도 있다.
늙어가는 몸,
식탁 맞은편에 앉은 오래된 배우자,
갑자기 비어버린 부모의 자리.
멀리 떠나지 않아도
삶은 이미 가까운 곳에
충분히 깊고 잔인하게 놓여 있다.
무엇을 찾으려고
아니면 무엇을 피하려고
그토록 먼 길까지 걸어가는 것일까.
산티아고를 걸은 흔적보다
'나, 산티아고 다녀왔어.'
그 어깨의 뽕이 먼저 보이는 건
아마 내 성격 탓일 것이다.
내가 그 길을 걷는다고 해도
삶의 진리보다는
얼굴만 새까맣게 타서 돌아올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의장을 나오다가
홀라당 넘어졌다.
산티아고 대신
병원 순례길에 올랐다.
이 길도,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