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경남 밀양으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서울은 장맛비가 많이 왔다고 하던데, 밀양은 흐리긴해도 비도 안내리고 비교적 날씨가 좋았습니다.

출장지에서 뜻밖의 반가운 얼굴도 만났습니다. 오래전 경남 쪽 회사로 이직한 옛 동료입니다.

밀양에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방문자 명단에서 제 이름을 보고 점심때 찾아왔더군요.

즐거운 얼굴로 함께 점심을 먹고, 일도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여러모로 보람된 출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호텔에서 쉬고 있는데 큰아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언제 집에 오세요?"

"금요일 오전에 올라가니 저녁은 같이 먹을 수 있겠다."

전화기 너머로 한숨 소리가 들립니다. 상의할 게 있다는 겁니다.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겼나 걱정이 되어, 회사에 출장보고를 마치자마자 바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가 기다리고 있더군요.

저녁을 먹고 제 방에서 마주 앉았습니다. 차를 한 잔씩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가 무겁게 입을 뗍니다.

"아빠, 다음 학기 학점을 확 줄여서 듣고 싶어요. 그리고... 군대도 좀 미뤘으면 해요."

잠시 멍했습니다. 요즘 말로 현타가 왔습니다.

아이는 원래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기로 했습니다.

가족 계획이나 일정도 다 거기에 맞춰 놓았습니다.

자취방도 2년 계약이라 이것도 복잡한 문제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니?"

"창업도 그렇고, 제 진로에 대해 좀 더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서요. 창업도 해보니 만만한 게 아니에요. 2라운드 준비하면서 다른 팀들을 보니까 면면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저희 팀이 제일 처져 있는 것 같아요."

요즘 한창 이야기가 나오는 모두의 창업입니다. 현재 1라운드를 통과하고 지금 2라운드를 준비 중인데, 올라가 보니 만나는 상대들에 비해 자기가 가장 뒤쳐져있다고 느끼는 겁니다.

"꼭 창업이 아니더라도 이것저것 진로를 생각해보니, 2학년인 제가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 저것 탐색해보고 싶은 게 많은데 수업을 다 따라가면서는 어렵겠더라고요.

그렇다고 무작정 휴학하는 건 답이 아닌 것 같고요."

"학점을 줄이면 학교를 5년 다녀야 하는데?"

"그게 제일 걸려요. 등록금이랑 생활비를 제가 내는 게 아니니까요..."

아이 목소리가 잦아듭니다. 가족 계획을 저 녀석도 다 알고 있으니까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고민한 흔적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안심부터 시켰습니다.

"걱정하지 마. 너는 어차피 재수를 안 했으니, 한 해 재수한 셈 치면 인생 그렇게 늦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아빠가 그 정도 뒷바라지는 해줄 수 있다 걱정마라."

그 말에 아이 얼굴이 확 피더군요.

마음이 안정된 것 같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했습니다.

진로와 취업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뿐만 아니라 같은 학과의 동기들도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청년 취업이 심각하다고 하더니,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집 이야기였습니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성과급 이야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인 겁니다.

아이를 보내고 혼자 남아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요즘 발표되는 고용 통계를 보면 청년들의 상황이 숫자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지난 5월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3.8%로 1년 전보다 2%포인트 넘게 떨어졌고, 청년 실업률은 7.2%까지 올랐습니다.

일도 구직도 하지 않고 '그냥 쉬었다'는 청년이 40만 명을 훌쩍 넘는다고 합니다.

더 눈에 들어오는 숫자도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채용공고 14만여 건 가운데 신입만 뽑는 공고는 겨우 2.6%였고, 나머지 97.4%는 경력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대기업 신입 공채는 1년 새 40% 넘게 줄었고, 졸업 후 첫 취업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1개월이 넘습니다.

모두가 경력자만 찾으면, 첫 경력은 어디서 쌓으라는 말입니까?

지금 청년들 앞에 놓인 것은 첫 계단이 사라진 사다리입니다.

그리고 그 계단을 없앤 것은 청년들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이 만든 구조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청년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그렇게 따뜻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배가 불러서 그렇다,

눈이 너무 높아서 그렇다.

물론 그런 점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 많은 청년들의 좌절이 아무런 노력 없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점은 이해주면 어떨까 합니다.

이들도 나름 치열하게 부딪치고, 밤잠 못 자며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기성세대가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청년들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어떨까 합니다.

돌아보면 그날 밤 아이가 제게 한 부탁은 결국 이것이었습니다. 시간을 조금만 달라는 것.

아이는 도망치겠다는 게 아니라, 더 잘 부딪쳐보겠다고 시간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방황과 탐색은 겉모습이 비슷해서 어른들 눈에는 자주 방황으로만 보입니다.

그날 아이 얼굴을 피게 한 것은 제가 준 정답이 아니라, 제가 벌어준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우리 기성세대가 지금 청년들을 보는 눈빛을 조금만 부드럽게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 눈빛 하나가 어느 집에서는 아이 얼굴을 확 피게 하는 한마디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아뭏든 큰아들 놈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다음 주에도 더 열심히 출장을 다녀야겠네요 ㅎㅎㅎ.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