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아침, 하늘이 잔뜩 흐려 있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산을 챙깁니다. 일기예보를 보지 않았더라도 살을 스치는 끈적한 바람과 먹구름이라는 '신호'를 직감적으로 읽었기 때문입니다.
재테크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설적인 투자자들은 시장이 무너지기 전에 나타나는 특유의 ‘조짐’을 보고 자산을 안전한 곳으로 옮깁니다. 자산 배분의 대가들이 평소에는 주식과 안전자산을 골고루 나누어 갖고 있다가, 위기 신호가 켜지면 서서히 금과 국채라는 대피소로 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경제 하늘에는 어떤 신호가 나타나고 있을까요?
① 실질임금 하락
첫 번째 신호는 마트 물가는 치솟는데 내 월급은 그대로인 상황, 즉 '실질임금 하락'입니다. 내 지갑에 구멍이 나면 당장 외식과 쇼핑을 줄이게 됩니다. 전 세계에서 소비를 가장 많이 하는 미국인들이 지갑을 닫으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의 공장이 멈추고, 그 공장에 부품을 수출하던 한국 기업들도 직격탄을 맞습니다. 이 신호가 6개월 이상 지속된다면, 위험한 주식을 줄이고 안전한 자산으로 대피해야 할 때입니다.
② 미국 2년물 국채금리
투자 시장에는 기상청보다 날씨를 먼저 알아채는 '철새'가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2년짜리 국채금리입니다. 이 금리가 갑자기 가파르게 치솟는다는 것은 시장에 이런 소문이 돌고 있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경기가 나빠져도, 중앙은행은 구하러 오지 않고 금리를 계속 올릴 거래!" 중앙은행의 냉정한 태도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경고등인 셈입니다.
③ 레버리지 폭발
'레버리지'는 내 돈이 아니라 은행에서 빚을 내어 주식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주식시장이 호황일 때는 이 빚의 성벽이 화려해 보이지만, 조그만 충격에도 와르르 무너지기 십상입니다. 2000년 IT 버블, 2007년 금융위기 때도 예외 없이 이 빚의 성벽이 먼저 무너졌습니다. 현재 시장의 빚 규모는 역대급 수준입니다. 쌓인 모래성이 높을수록 무너질 때의 충격도 큽니다.
④ IPO 붐
최근 스페이스X, 오픈AI 같은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초대형 기업들의 상장(IPO) 소식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시장 전체로 보면 이는 ' 공급 과잉'이라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시장에 돌아다니는 돈의 양(주차장 크기)은 정해져 있는데, 덩치가 거대한 대형 트럭(신규 기업)들이 무더기로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요? 새 차를 주차하기 위해 기존에 있던 차(기존 주식)들을 강제로 밀어내야(팔아야) 합니다. 결국 시장 전체의 주가가 흔들리는 원인이 됩니다.
⑤ 기준금리 정점
은행 이자가 오를 대로 올라 꼭대기에 찍은 상황입니다. 이자가 너무 높으면 기업도 사람도 숨이 막히기 시작합니다. 비행기가 가장 높은 고도에 도달하면 힘이 빠져 곧 내려올 일만 남았듯, 금리가 최고점에 달했다는 것은 경제의 성장 엔진이 지쳐 조만간 하락세로 돌아서기 직전이라는 아슬아슬한 신호입니다.
⑥ 장단기 금리차 역전
상식적으로 돈을 10년 빌릴 때(장기)가 1년 빌릴 때(단기)보다 이자(금리)가 비싸야 합니다. 오랜 기간 돈이 묶이는 위험 대가죠. 그런데 "당장 내일 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면, 단기 이자가 장기 이자보다 높아지는 기괴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역사적으로 이 '앞뒤가 바뀐 현상'이 나타난 뒤에는 어김없이 극심한 경제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시장이 보내는 강력한 '레드카드'인 셈입니다.
위기는 늘 잔잔한 바람으로 시작해 순식간에 폭풍우로 돌변합니다. 지금 시장은 빚이 가득 차 있고, 거대 기업들의 상장으로 주차장이 비좁아질 준비를 하고 있으며, 금리는 꼭대기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먹구름이 낄 때 '채권·금·은'이라는 우산을 써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이 6가지 신호가 켜졌을 때, 우리는 왜 하필 채권, 금, 은으로 자산을 옮겨야 할까요? 이 세 가지 자산은 경제의 겨울을 버텨내게 해주는 서로 다른 매력의 '방한 용품'이기 때문입니다.
1. 채권
채권은 쉽게 말해 '국가나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받는 차용증'입니다. 위기가 찾아와 경기가 나빠지면 중앙은행은 얼어붙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시중 금리를 강제로 낮춥니다. 이때 "과거의 높은 이자를 꼬박꼬박 주겠다"고 약속된 내 채권의 몸값(가격)은 치솟게 됩니다. 위기 상황에서 따뜻한 이자도 받고, 채권 자체를 비싸게 되팔아 보너스 수익까지 챙길 수 있는 안전한 패딩 점퍼 같은 존재입니다.
2. 금
위기가 오면 정부는 경제를 살리려고 시장에 돈을 엄청나게 달러와 원화로 찍어냅니다. 돈이 흔해지면 종이 화폐의 가치는 뚝뚝 떨어지지만, 인간이 마음대로 찍어낼 수 없는 '금'의 가치는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가 혼란에 빠져 종이돈을 믿지 못할 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는 유일한 진짜 돈이 바로 금입니다. 폭풍우 속에서도 절대 썩거나 가치가 변하지 않는 방수 천막인 셈입니다.
3. 은
은은 금과 같은 '안전 자산'의 성격을 가지면서도, 반도체나 태양광 패널 등 다양한 산업에 쓰이는 '원자재'의 성격을 동시에 가집니다. 그래서 위기 초기에는 금과 함께 가격이 방어되다가, 위기가 끝나고 경제가 다시 회복되기 시작하면 산업 수요가 폭발하면서 금보다 훨씬 가파르게 가격이 치솟는 특징이 있습니다. 금보다 가격이 저렴해 쉽게 살 수 있으면서도, 추후 경기 회복기에 강력한 한 방을 날려줄 수 있는 든든한 부츠와 같습니다.
위기는 늘 잔잔한 바람으로 시작해 순식간에 폭풍우로 돌변합니다. 지금 시장은 빚이 가득 차 있고, 거대 기업들의 상장으로 주차장이 비좁아질 준비를 하고 있으며, 금리는 꼭대기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하늘에 먹구름이 짙어지는데도 "설마 비가 오겠어?"라며 맨몸으로 서 있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도박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맑은 날의 반소매 옷(주식)뿐인가요?
아니면 만약의 폭우를 대비해 꼬박꼬박 이자가 나오는 채권, 가치가 변하지 않는 금과 은이라는 든든한 우산을 준비해 두셨나요? 시장의 신호를 읽고 우산을 펴는 눈이 곧 당신의 자산을 지키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p.s. 아래 사진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최근 제주의 풍경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