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부모를 모시는 사람이 50대, 60대였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70대가 90대 부모를 돌본다.
수명이 길어진 사회가 만든
새로운 풍경이다.
얼마 전에 읽은 이야기다.
곧 70세가 되는 사람이
95세 아버지와 92세 어머니를
오랫동안 집에서 모셨다.
그런데 어느 날,
돌보던 본인이 먼저
쓰러졌다.
더 이상 부모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부모님을 요양원으로 모셨다.
그 후의 이야기가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같은 방에 지내게 된 노부부.
아버지는 아내를 돌보려 했지만
몸도 마음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때로는 아내를 밀치고
화를 내기도 했다는
이런 일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평생 함께 살아온 아내를 향한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몸도
감당하기 어려운 나이가 된 것이다.
100세 시대.
부모도 노인이고, 자녀도 노인이다.
지금은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한 노인이
더 연로한 노인을 돌보고 있다.
우리는 부모를 끝까지
집에서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래서 요양원을 선택하는 순간
죄책감부터 느끼곤 한다.
하지만 노년의 돌봄은
사랑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체력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돌보는 사람 자신이
건강해야 한다.
실버타운에서도
가끔 70대 자녀가
거의 백세에 가까운 부모를
휠체어에 태워 산책시키는 모습을 본다.
예전에는 특별한 장면처럼 보였지만
앞으로는 점점 더 흔한 풍경이 될 것이다.
초고령사회는
단순히 노인이 많아지는 사회가 아니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사회다.
아무리 효심이 깊어도
치매 환자를 24시간 돌보는 일은
한 사람의 삶을 모두 소진시킬 수 있다.
그래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선택하는 것이
반드시 불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족 모두가 함께 무너지지 않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누가 부모를 모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부모도 자녀도
함께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부모를 끝까지
집에서 모시는 방법만이 아니다.
언젠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때를 미리 준비하는 지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