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저희 시어머니였습니다. 충청남도 ○○군에 사셨어요.

결혼한 지 26년, 시가와 연을 끊은 지도 벌써 12년 정도 됐네요.

시댁에 가서 자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아들은 안 깨우려고 제 발바닥만 간지럽혀 깨우셨어요. 아들을 부르면 같이 깨니까요.

그러면서 늘 "사랑한다, 사랑한다."를 입에 달고 사셨는데, 저는 그 말이 사랑으로 들린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들을 때마다 소름이 끼쳤어요.

결혼 전 상견례에서는 "아파느 전세를 마련해 주겠다", "애는 내가 봐주겠다"고 하셨지만 결국 전세는커녕 500만 원만 주셨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친구들이 손주 보면 늙는다고 하더라."며 아이도 봐주지 않으셨습니다.

친정도 넉넉한 집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남편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기독교를 믿으셨던 어머님은 추도예배를 드릴 때마다 "불교 믿으면 거지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 친정이 불교인 걸 아시면서요. 하지만 친정이나 시가나 경제사정은 똑같았고, 오히려 돈을 요구하는쪽은 시가였죠. 남편이 계룡남이라도 됐으면 큰일 날뻔했어요. 종교 강요도 참 힘들었습니다.

시가에서 시누 부부가 놀러 와 술을 마신 날, 저는 먼저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저 들으라는 듯 "이걸 안 치우고 잤다."며 화를 내시더군요. 저는 그들이 술을 다 마실때까지 기다렸다가 치워야하는 사람이었던 거죠.

또 "시집에 왔으면 걸레질도 하고 이불도 펴야지."라는 말도 자주 들었어요.

가장 잊히지 않는 일은 따로 있어요.

부부 모두 빠질 수 없는 회사 회식이 있어 하루만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드렸던 날,

서랍장의 속옷과 옷가지는 남편것이 모두 위로, 제것은 모두 아래로 넣어져 있었고

다음 날(토요일이라 남편은 자고 있었어요) 출근하려는데 시어머니가 저를 보며 한마디 하시더군요.

"야, 너는 시어머니 밥도 안 차려주고 나가냐?"

토요일에도 일하러 나가는 며느리였는데, 고맙다는 말은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불쌍하다는 마음 정도는 가져주실 줄 알았어요.

그날 이후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를 맡기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도 비교는 빠지지 않았어요.

"옆집 며느리는 시부모 모시면서 집도 새로 지었다."

"우리 아들은 누구누구가 탐냈는데 너랑 결혼했다."

저는 "제 친구 시부모는 결혼할때 집 장만해주시고, 아이낳으니 차도 사주셨다" "저도 탐내시는 주위분들 많았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리고 착했어서 그냥 웃어 넘겼어요.

명절이면 "그것도 더 하고, 이것도 더 사라. 며느리는 손이 커야 한다."는 말씀도 늘 들었죠.

돈 문제로 힘들었던 일은 너무 많아서 다 적지도 못하겠고, 종교 강요도 정말 지쳤습니다.

시누들과의 일도 많았어요.

막내 시누이는 "언니가 우리 집에 와서 한 게 뭐가 있냐?"고 했고, 나중에 물으니 기억도 안 난다고 하더군요.

큰시누이는 "엄마 김장하는데 왜 안 오냐?"고 하길래 처음으로 말했습니다.

"엄마가 힘들면 딸인 본인이 챙겨요. 나는 딸이 아니죠."

그 뒤로는 아무 말도 못하더군요.

자기 아들 이름에 들어가는 글자가 그 이후 태어난 저희 아들 이름에도 들어가니 "나 따라한거 아니야?"라고

했는데, 사실 웃겼어요. 뭐든 따라하고 싶은게 1도 없는 사람이거든요.

빌려 간 제 물건들은 돌려받은 적도 없고, 결혼 전에는 "나도 결혼할때 차(소형 중고차) 도 해 갔으니 너도 많이 해와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한 번도 가족여행을 해본적 없는 시가를 위해 회사 콘도를 예약해 시가 식구들과 가족여행도 갔습니다. 그게 좋았는지

여름휴가를 계획하더니 그때 제가 민소매를 입었다고 큰시누이와 큰시누이 시어머니가 뒤에서 흉을 봤다고 하더군요.

민소매가 무슨 큰 결례인 것처럼요.

그나마 둘째 시누이는 착한 사람이라 지금도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런 일로 내가 마음에 상처가 있었다 어머님께 말씀 드리니

"니가 그걸 잊어버려야지, 다 기억하고 있는게 문제다" 하시기에 연을 끊었습니다.

그 외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글이 길어질 것 같아 여기서 그칠께요.

마지막으로, 많은 분들이 남편은 뭐 했냐고 물으실 것 같네요.

맞습니다.

남편은 중간에서 저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너만 참으면 아무 일 없다."며 참으라고만 했죠.

지금은 본인도 그게 얼마나 잘못된 일이었는지알아요.

가끔은 이 사람과 결혼해서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을 만나 오랫동안 마음고생한 게 억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남편은 성실한 아빠였고, 지금은 누구보다 저에게 잘하려고 노력해요.

시가와 연을 끊고 나니 남편과의 싸움도 거의 없어졌어요.

아이들도잘 커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500만 원 월세로 시작했던 저희가 이제는 자녀 결혼도 조금이나마 도와줄 수 있게 됐고, 노후도 걱정하지 않을 만큼 살게 됐습니다.

잘 사는게 복수라고 하던데, 그냥 그들끼리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도 잘 살길 바래요.

남편은 원가족으로부터 "사과 받길 바래?"라고 물어보지만, 사과도 적절한 타이밍 있는 거고, 그 타이밍이 지나면 의미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은 절대 잘못했다고 생각해도 사과를 못하는 인간들이기에, 저는 지금이 너무 좋기에 바라지 않아요.

그런데도 가끔 시가쪽 생각이 나면 울컥한게 이런 일을 누구에게 제대로 털어놓은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오늘은 여기에서라도 한번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