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아랫 글에서 yoyomi님이 유산에 얽힌 딸과 아들 차별과 그에 따른 서운함에 대해 쓰신 글을 읽었습니다. 읽다 보니 몇 해 전 형과 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일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전형적인 옛날 어르신이십니다. 제사를 지내지는 않지만, 대를 잇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당연히 아들을 더 선호하시는 분입니다.

저희 집은 4남매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부모님의 편애가 있었습니다.

큰누이는 첫째라서 이쁨받고, 형은 장남이라 이쁨받고, 저는 아들에 막내니 이쁨받았습니다.

문제는 둘째 누이였습니다.

아들을 낳으려다 딸이 태어난 경우라, 어릴 때부터 집안의 천덕꾸러기 노릇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둘째 누이는 사람은 참 좋은데 공부를 그다지 잘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대학도 못 가고 상고를 나와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이가 들고 보니 다 허당이더군요.

둘째 누이는 공부머리는 없어도 일머리는 있었습니다.

회사 생활도 잘했고, 공무원인 매형을 일찌감치 만나 재테크도 잘했습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 네 형제자매 중 자산도 가장 많을 겁니다. ㅎㅎㅎ

무엇보다, 지금 어머니 아버지를 지근거리에서 늘 살피는 것은 둘째 누이네 집안입니다.

형이나 저 같은 불효(?) 자식에 댈 바가 아닙니다.

그런데 몇 해 전,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저와 형을 조용히 부르셨습니다. 마지막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입니다.

유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유산이라고 해봐야 서울 아파트 한 채와 주식 약간이 전부입니다만, 요지는 형과 저에게 더 물려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생각은 형 4, 저 3, 두 누이에게 각 1.5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형만 집이 없으니 차라리 집은 형이 갖고, 나머지 형제자매에게는 돈으로 계산해 주면 어떻겠냐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형은 애초에 집으로 재테크를 안할 뿐이지 돈이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형이 딱 잘라 말하더군요.

절대 그렇게 하지 마시라고. 그렇게 나누면 아버지 돌아가신 다음에 형제자매끼리 반드시 분쟁이 생긴다고.

아버지는 선의로 나누신 것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차라리 4를 둘째 누이에게 주고, 나머지를 2씩 주세요. 둘째 누이는 대학도 못 갔고, 무엇보다 지금 하고 있는 걸 보세요. 그렇게 나누면 아무 문제 없어요."

그것도 아니면 아예 아무 유언도 남기지 마시라고,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가장 많이 받기로 되어 있던 사람이, 자기 몫을 절반으로 줄이자고 먼저 말한 셈입니다.

형이 워낙 강하게 이야기하니 아버지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니들이 내가 간 후에 알아서 정리하라고 하셨습니다.

형과 사이도 좋았고 나름 합리적인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날은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로 우리 집에서는 언제 모이나 어느 누구도 유산 이야기를 꺼내지 않습니다.

요즘 세태를 보면 유산 분쟁 문제가 남의 집 이야기가 아닙니다.

작년에 나온 대법원 2025년 사법연감을 보면, 2024년 한 해 동안 접수된 상속재산분할 사건이 3,075건으로 역대 최대였다고 합니다.

10년 전인 2014년에는 771건이었으니, 10년 만에 4배가 된 것입니다.

유류분 소송도 마찬가지입니다.

2010년 452건이던 것이 2020년 1,444건을 넘었고, 최근에는 한 해 1,800건대까지 올라 역대 최대 기록을 매년 갈아치우고 있다고 합니다.

한 해 3천 건이면, 하루에 여덟 집꼴로 형제자매가 법정에서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제 눈길을 끈 이야기는 따로 있었습니다.

상속 분쟁의 절반 이상은 재산 규모가 아니라 감정적 갈등이 핵심 원인이라고 합니다.

재산이 많지 않아도 분쟁은 얼마든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오래 생각을 했습니다.

자식들이 다투는 것은 돈 몇 푼 때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유산이 부모가 마지막으로 매기는 '성적표'처럼 읽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가 얼마를 받았느냐가, 부모가 누구를 얼마나 사랑했느냐의 순위표로 읽히는 것입니다.

돈은 나누면 되지만, 서운함은 나눌 수가 없습니다.

형이 그날 막았던 것도 결국 돈의 분쟁이 아니라 마음의 분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형이 그대로 수용했다면 저도 뭐라 못했을거고, 그러면 yoyomi님과 같은 서운함을 우리 둘째누이도 느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양보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더군요.

적게 받는 사람이 하는 양보는 체념이고, 많이 받는 사람이 하는 양보라야 비로소 힘이 있습니다.

형의 한마디가 그 자리에서 모든 논의를 끝낼 수 있었던 것은, 가장 유리한 사람이 먼저 자기 몫을 내려놓았기 때문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둘째 누이 생각을 합니다.

가장 덜 사랑받고 자란 자식이, 지금 부모를 가장 가까이서 모시고 있습니다.

사랑은 투자와 달라서, 넣은 만큼 돌아오는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오히려 계산 없이 사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암튼, 왜 우리 부모세대는 그런 쓸데없는 유교적 관점 때문에 자식세대를 힘들게 만들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동시에 가족 간의 우애보다 돈이 앞서는 세태가 참 쓸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만큼 다들 살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도 듭니다.

점심 식사 후 커피 한잔 하면서 쉬는데 쓸데 없는 생각이 너무 많아집니다 ㅎㅎㅎ. 오타도 빈발하네요. ^^;;;

다시 일 시작해야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