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점심에 우산을 도둑맞았습니다.

그날도 점심을 먹고 직원들과 회사 근처 단골 카페에 차를 마시러 갔습니다.

소나기가 와서 다들 우산을 들고 갔습니다.

카페 앞에 우산꽂이가 있어더군요. 다들 우산을 꽂아놓고 들어갔지요.

차를 잘 마시고 나오는데, 어라, 제 우산이 없는 겁니다.

파란색 긴 장우산이라 다른 우산보다 한 뼘은 더 길어서 눈에 잘 띄는 놈인데 말입니다.

다른 회사 기념품으로 선물받은 것이라 헷갈려서 가져갈 만한 물건도 아니었습니다.

아끼던 우산이라 카페 사장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젊은 사장이 몹시 당황하더군요.

"손님, 죄송합니다. CCTV 돌려보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번호를 남기고 나왔습니다.

오후에 근무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카페 사장이었습니다.

"손님, CCTV 확인해봤는데요. 가져가신 분이 바로 나오더라고요. 동영상 보내드렸는데 우산 맞으신지 한번 봐주시겠어요?"

보내준 동영상을 살펴보니 제 우산이 맞았습니다.

허름한 옷을 입은 노인 한 분이 카페 앞을 지나가다가 우산꽂이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다가와서 제 우산을 들고 가는 장면이었습니다.

"맞네요, 제 우산.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게 참 애매합니다. 이런 건은 신고를 해도 워낙 경미한 사안이라 경찰에서 잘 조사를 안 하더라고요. 그리고 저렇게 연세 드신 분이면 잡아도 문제고요. 원하시면 저희가 대신 신고는 해드릴 수 있는데…"

말끝이 흐려지는 것이 사장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신고를 하자니 실효가 없을 것 같고, 보상을 해드리자니 그 말을 꺼내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자니 단골손님 발길이 끊어질까 걱정도 되고. 젊은 사장의 머릿속이 훤히 보이는 듯했습니다.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 젊은 사장이 일하는 개인 카페라 더 이상 이야기하는 것도 뭐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닙니다, 사장님. 알겠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다음부터는 비가 와도 어쩔 수 없이 우산은 들고 들어가야겠네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손님. 편하게 들고 들어오세요."

안도하는 것이 전화기 너머로도 느껴지더군요.

전화를 끊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아끼던 우산이라 아까운 마음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우산을 가져간 그 노인에 대한 생각이 자꾸 머리를 맴도는 겁니다.

저분에게도 자신의 노후를 준비할 시간이 분명 있었을 텐데.

무엇을 하며 살아왔기에 이제는 남의 우산에 손을 대는 사람이 되었을까?

자식은 있을까? 있다고 한들, 저런 식으로 삶을 살아간다면 곁에 아무도 남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다 생각이 좀더 퍼졌습니다. 잘 늙어간다는 것은 뭘까?

우리는 노후 준비라고 하면 흔히 돈을 먼저 떠올립니다.

연금은 얼마나 쌓였는지,

자산은 얼마나 되는지 계산기부터 두드리게 되지요.

저도 평생 그 계산을 하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계속 머릿 속에 맴돌았던 생각은 돈 말고도 다른 것이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품위였습니다.

형편이 어렵다고 모두가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것은 아닙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남의 것에 손대지 않고 꼿꼿하게 살아가는 어르신들이 우리 주변에는 훨씬 많습니다.

가난하지만 남에게 폐끼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심지어 한 때는 안분지족과 안빈낙도를 더 중시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런점에서 가난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가난을 핑계로 지킬 것을 놓아버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늙는다는 것은 결국 늙어서도 지킬 것을 지키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을 지킬 때 나이드신 어른으로서의 자존감과 품위가 지켜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굽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까지 굽어버리면, 그때부터는 나이가 훈장이 아니라 면죄부가 됩니다. 그리고 면죄부 뒤에 숨기 시작하는 순간, 사람들은 품위있는 어르신이 아니라, 민폐를 남말하는 노인이 되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 우산을 훔쳐가진 분은 우산은 하나 얻은 것이겠지만, 자신의 자존감과 품위는 잃어버린 것이겠지요.

우산 하나 잃고 얻은 것치고는 꽤 묵직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잘 늙어야겠다는 생각말입니다.

우나어 분들께서도 품위있게 나이들어가시는 어르신들이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