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6~70년대생이 이글을 보시고 학창시절 아픈 기억을 들추게해서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좋으신 선생님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아...

찬찬히 써내려가겠지만 두서없더라도 이해해주세요.

제가 유년시절을보낸곳은 아주 시골이었어요.

그때당시 시골 초등학교는 고졸이신 나이드신 선생님도 계셨구요.

거의 부모님들의 직업이 농업이나 어업이셔서

가난하고 못배우신 부모님들이 대부분이셨고

동네에서 그나마 잘사시고 제때 월급을 받고 생활하신분이 학교소사였었죠.

거기서 거기일거같지만 그거기에서도 부류가나눠지는데

그건 아이들옷차림과 그리고 예쁘게 꾸미고오신

젊은 학부모가 다녀간후 상황은 더 달라졌어요.

먹고살기가 전쟁같았던 저희 부모님같은 경우는

등교준비는커녕 우리들을 깨워놓고 들에일하러나가시기 바빴고

며칠째 똑같은옷을입고 등교하던 저는 아마 이제막 초임선생님이신 젊은 아가씨눈에 사람으로안보였을거예요.

그때부터였던거같아요.

글짓기좋아하고 그림그리는거좋아하지만

수학성적은 그닥이었던 저에게 국어시간에는 수학문제풀게하고 수학시간에는 나가서 철봉연습시키고...

그러다 그분의 기분이 더안좋은날에는 의자한번끌었다고

싸다구맞고.. 20대 초반의 키크고 체격이좋으신 여자선생님의 손바닥은 크고 많이아팠고 그날의 아이들의 긴장한 숨소리.찰싹거리는 소리, 선생님의 희열인지모를 미소까지

아직도 영화한장면같이 기억이 생생하네요.

저는 그때 너무나 말랐고 약하게 태어나기도했지만

영양섭취를 제대로하지못해 잘 쓰러졌는데

다른아이 다수업하는데 책상위에 무릅끓고앉아 손들고 서있기도했구요. 너무힘들고 슬펐어요.

어린마음에 죽고싶었어요.

집에 농약이많았는데 먹고죽고싶을만큼요.

중간중간 여러가지 사건도있었지만 다 기억은아나지만

시험봁때 선생님이 의자를끌고 제옆에앉아서 내내 지켜보셨던 기억이나요.

제가 제일 좋아하고 잘하던 국어시험이었는데

지켜본다는 부담감과 선생님의 무서움때문에 식은땀을 흘리며 겨우 시험을보았는데 평소성적의 반도안되게나왔던 기억이나네요.

그러다 세월이 한참지나 제가 고등학교를갔는데

우연히 읍내거리에서 그분을만났어요.그새 결혼을하셨는지

작은 여자아이가옆에있었구요.

저를보더니 기억을하시는거같았어요.

당신의 자식을 자신의 안쪽으로 끌어당기셨거든요.

그리고 도망치듯가시는데 이게 참...

스승과 제자가 이렇듯...여러가지 생각을하게만든 장면이었어요.

남의 자식은 그토록 함부로하고 본인의 자식은 혹시나 해꼬지할까봐 뒤로 숨기시는 추악한 어른의 모습이랄까..

지금이라도 살아계신다면 그리고 찿을수만있다면

가서 물어보고싶어요.

왜 그러셨는지..,

왜 특히나 저포함 가난한 아이들에게 유독 차별과 폭력을하셨는지..

묻고싶지만 예전에 선생님찿기에도 미공개로해놓으셔서

찿을방법이없네요.

그래도 선생님 덕분에 감사한일도있어요ㅜ

가난하면안되는구나.

내 자식들이 가난으로인한 차별을받으면안되겠구나싶어

누구보다도더 열심히살았고 베풀고살았던거같아요.

그리고저희 아이도 아이들을 가르치는직업인데 먼저 너의 선입견으로 아이들을보지말것.차별하지말것.세상에 아무리 못난아이라도 찿아보면 하나라도 재능이있고 빛나는 모습이있을꺼다. 그걸 부디 놓치지말고 세상밖으로 나오게해라라고 이야기해요.

그게 스승이다..평생을 누군가의 기억속에 좋은 어른으로 기억되길..그렇게요..

여기 우나어카페를통해 배우는것도많고

느끼는것도많아요.

여기 언니,오빠,동생님들 덕분에 주식모우기만했지 다른건 생각안했는데 연금저축펀드도들고 국민연금 추납도하고

나름바쁜 상반기를보냈네요.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기억나는 선생님은 어떤모습이있나요?

저는 조씨성을가진 미성숙 어른이요..

두서없는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