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하시죠?
일 당하자마자
일단 4군데 상조회사 전화해서 가격이 젤 싸고 집에서 과히 멀지않은 곳으로 정했습니다.
7월 20일 저녁 7시 40분 오빠가 숨을 거뒀고 다니던 병원, 119,112차례로 전화했고
곧 119가 왔고 형사 두분도 왔습니다. 정황을 듣고 형사가 바로 상조회사 운구차량을 부르라고 했고 장례식장 시신 안치실로 가도록 배려해주어 바로 운구 차량이 왔습니다.
시신을 수습할 간단한 도구들이 내려졌고 시신을 감싸는 얇은 베천으로 깨끗하게 감싸고 이동용 침대에 눕혀 차량으로 이동하여 장례식장 도착, 얼굴 확인하고 바로 안치실에 안치했습니다. 이때 저는 시신이 된 오빠 얼굴을 처음 봤어요. 나도 모르게 오빠,오빠 부르면서 오열을 했습니다. 하염없이 울고 있으니 상담실 가서 앞으로 절차와 비용 안내를 하겠다고 해서 정신 차리고 따라가서 설명을 들었어요.
법으로 사망후 24시간 이내 화장,매장 안되기에 할수없이 하루 지나 22일 오전 11시 30분 결집, 12시부터 입관, 1시경 발인, 3시 화장이라고 했습니다.
그 길로 집에 돌아가 21일은 할일 없이 집에 있었고 하필 개가 아파서 (덩치큰 녀석이라 더위를 너무 타서 에어컨 틀어놓은 현관에 중문 열고 두었더니 냉방병인듯요.ㅠㅠ)
개 토해서 씻기고 빨래하고 약 먹이고 죽 끓여 먹이고 뭐 그렇게 나머지 준비를 조카와 계속 전화 통화하며 브리핑? 받았습니다.
그리고 22일 제 딸과 두 조카녀석,제 남편이 장례식장에 오전 11시에 모였고 점심 먹을 시간이 없을듯 해서 장례식장에 양해를 구하고 장례식장 지하 빈 식당에 앉아 커피와 김밥을 사다 다 같이 먹었어요. 이건 미리 잘한듯...그 이후 물 한모금도 먹을 정신이 없었어요.그때 저는 김밥 한줄과 아이스카페라테로 충전해 두었습니다.
옷은 상조에서 빌릴수 있는데 저희는 안빌리고 각자 깨끗하고 단정한 검정색 옷으로 입었답니다. 보여줄 사람없으니 남자들은 검은 카라 티와 검은 바지를 맞춘듯 입었고 저도 최대한 단정한 검은 브라우스 검은 정장치마 검은단화를 신었고 딸아이도 장식없는 검정 세일러 브라우스를 입고 왔더군요.
김밥과 커피를 다 먹자마자 연락이 와서 입관실로 가니 이미 시신을 다 씻겨 수의를 입혀놓았더군요. 얼굴만 드러낸 상태로요. 장례 지도사가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해서 우선 교회 다닌 짬밥이 젤 오래된 제가 입관 대표기도를 했습니다. (저희 친정집은 삼대째 모두 기독교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하니 이미 임종전에 많은 대화,할말은 다 했다는군요. 그래서 제가 큰 소리로 "오빠 고생했어. 수고했어. 고마와. 오랫동안 엄마 모셔줘서 고마와. 다음에 꼭 만나. 잘가." 그랬습니다.
가족 다같이 시신을 들어 하얀 종이로 장식된 관에 넣었고
얼굴에도 수의를 마저 씌우고 종이로 만든 이불,베로 만든 이불 차례로 가족들이 함께 덮어주었습니다.
관뚜껑을 닫고 관 바깥쪽에 매직으로 오빠의 이름을 조카가 썼습니다. 관 위에 십자가가 크게 그려진 빨간 천으로 덮었구요.
그것으로 입관식은 짧게 끝났어요.
가족들은 제 남편차에 다 타고 화장장으로 이동하고 운구차와 화장장에서 2시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화성 백암산 추모공원이 화장터인데요. 시설이 크고 지은지 얼마 안되어 정말 깨끗했습니다.
기다리니 곧 운구차가 도착했다하여 나가서 맞이했는데 차에서 내려 관을 올려놓는 카트까지만 2~3미터 옮기면 되서 남편과 두 조카, 장례지도사 네명이 관을 들어 옮겼습니다. 이후는 카트로 이동했습니다.
화구로 들어가기전 마지막 인사를 하라더군요. 온 가족이 관 주변에 빙 둘러서서 관에 손을 올리고 각자 짧은 기도를 하고 또 순조로운 장례 절차에 대한 감사와 부활의 소망과 남은 자들이 고인의 뜻대로 열심히 살수있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시라고 제가 또 간단한 대표기도를 했고 관은 화장하러 들어갔어요.
약 1시간쯤 기다리는데 유가족들에게 소파와 푹신한 매트가 깔린 방 한칸이 무료로 제공되더군요. 다른 화장터에서는 받아보지 못한 서비스라서 매우 좋았습니다. 기다리면서 유골함을 골랐고 진공이 되는 항아리로 선택해 그 자리에서 화장비용 16만원과 유골함 40만원을 결제했고 화장이 끝나면 생몰 연도등이 기입된 유골함에 냉각처리된 뼛가루를 진공으로 담아서 보자기로 싸서 유족들에게 주어진다는것을 알았습니다.
다 끝나고 유골함을 받아들고 이른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뒤늦게 달려온 79세 외사촌오빠가 밥값 15만 8천원을 계산해 주셔서 매우 송구스러웠습니다.
아까 쓴 글에 비용은 자세히 썼구요. 과정과 순서는 이러했습니다. 다 끝나고 함백산 추모공원을 떠나온것은 4시반 쯤이었고 유골함을 안치할 추모공원에 가서 유골함을 안치한것은 오늘 이른 아침이었구요. 이렇게 모든 장례가 끝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