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때 살던곳은 엄청 시골이었어요.

국민학교때 학교가려면 고개를 세개넘었고

검정고무신을 신고 비바람 맞아가면서 겨울엔 언땅을 밟아가면서 학교를 다녔었지요.

하교후 집에 오는길 논두렁에 삐삐가 굶주린배를 채우고

목화밭에 여린 목화열매가 달달하니 좋은 간식이되기도했죠.

그시절 덮어놓고 많이낳아놓은 자식들은 어린 노동력이었고

무지한 부모는 학교만 보내놓으면 다되는줄알았지만 그때 당시 폭력적이거나

성추행이 난무했던 일부 선생님들한테 어린 아이들은 무방비상태였어요.

선생님의 기분상태에 따라 덜맞고 더맞고가 결정되는 그런날이 수없이 많았었죠.

국민학교도 빈부격차가 있었지만

교복 자율화시대인 저희들의 중,고등 시절은 진짜 죄악이었던거같아요.

확연하게들어난 빈부격차..

영화 써니보셨다면 그때 당시 스타일이 이해가되실거예요.

청바지에 헐렁한 잠바.소방차 바지..핑클파마

그토록 갖고싶었던 마이마이까지.

지금도 제 베프랑 가끔 이야기해요.

누가만든 교복자울화인지 모르지만 빈부격차는 그렇다치고 평생 교복한번 입어보지못하고 끝나버린 학창시절은 지금도 너무 아쉽다고요.

저도 교복이 참 잘어울리는 스탈이었는데.쩝.

그러다가 고등학교때 서울로 이사를왔는데

진짜 신세계였어요.

첨 먹어본 피자,파르페.전기구이 통닭,부대찌게,

살던곳이 신촌이랑 가까워서 대학생들의 자유를봤고

서점에서 읽고싶은 책을 한시간넘게봐도 누가 워라는 사람이없어서 진짜 좋았었네요.

하루 마무리하고 자려고 누웠다가 간만에 오랜 친구랑 통화하다가 너집이 더 잘살았네 아니다 너집이 우리집보다 더 나았다 그러다가 서로 웃었네요.

다 못살았는데말이죠..

시골에서 태어난 우나어 분들 서로 한가지씩 추억한페이지 꺼내볼까요?ㅎ

아카시아,사루비아 꾳꿀빨던 달달한 기억도좋고

나무하러다니던 마른 아이여도좋고요..

저는 참고로 바닷일,농삿일,부엌일을 국민학교때 이미 마스터를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