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에는 꼬리를 잃은 여우가 등장한다.

덫에서 겨우 살아남았지만 꼬리를 잃은 여우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인정하는 대신, 다른 여우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꼬리는 원래 불편한 거야. 없어야 더 가볍고 편해."

그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자신의 상실을 철학처럼 포장한 변명이었다.

가끔 나이가 들수록 꾸밀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 우화가 떠오른다.

"이 나이에 화장은 뭐 하러 해."

"옷은 아무거나 입으면 되지."

"늙었는데 꾸며봐야 달라질 게 있나."

물론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아도 된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억지로 유행을 좇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정말 스스로 원해서 꾸미지 않는 것과, 이미 포기했기 때문에 꾸미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혹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이 나이에는 원래 그래'라는 말 뒤에 숨어, 잃어버린 자신감을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외모는 조금씩 변한다. 피부에는 시간이 남긴 흔적이 생기고, 몸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러나 멋은 젊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잘 다린 셔츠를 입는 일, 머리를 단정히 손질하는 일,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을 찾는 일, 향기 좋은 비누를 고르는 일. 그런 작은 정성은 남을 위한 연출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존중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이 들어 꾸민다는 것은 젊어 보이려는 몸부림이 아니다.

오늘도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긴다는 조용한 선언이다.

코코 샤넬은 이런 말을 남겼다.

"패션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남는다."

유행은 계절이 바뀌면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삶을 살아온 사람의 태도 속에 남는다.

스타일은 비싼 옷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 나이를 핑계 삼지 않는 마음, 거울 앞에서 오늘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마음에서 완성된다.

꼬리를 잃은 여우는 자신의 상실을 모두의 기준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

누군가는 "이 나이에 무슨 멋이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 말은 진실이라기보다, 어쩌면 자신이 오래전에 내려놓은 것에 대한 위로일 수도 있다.

나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져가지만, 자신을 아끼는 마음까지 가져가지는 못한다.

오늘 거울 앞에서 옷깃을 한 번 더 다듬고, 입술에 은은한 색을 더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한 가지를 선택해 보자.

그것은 젊음을 붙잡기 위한 일이 아니라, 삶을 끝까지 아름답게 살아가겠다는 가장 품위 있는 태도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