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에서 나왔던 대사가 가슴을 치네요.부모님은 돌아가시면 애틋하게 그리워 하기도 하고, 산소도 찾아가고 그러는데 자식은 죽으면 그 이름도 함부로 입에 못 올리고, 남은 가족끼리 "우리 산소 가자" 말도 서로 못 꺼내죠.애순이가말하네요."부모는 죽으면 추억이 되지만, 자식은 죽으면 '죄책감' 때문에 추억이 될 수 없다"고..이 드라마 보면서 친구 생각도 많이 났어요. 딱 동명이 만할 때 아이를 잃고 20년을 힘들어 했습니다. 친구가 몇 년 전에 "00야, 이제는 집에 있어도 좀 괜찮아"라고 했어요. 그간 미친듯이 일만 하길래 그래도 일로 조금씩 잊나 보다, 그나마 다행이다 했는데 그게 아니라 "집에 혼자 조용히 잠깐이라도 있으면 미칠 것 같아서 있을 수가 없었다" 하더라고요. 그게 거의 20년이 흐른 다음 한 말이에요.(애순이가 "(그 일을) 한순간도 잊지는 못하지. 살다 보니 잠깐잠깐씩 생각이 안 날 때가 있긴 해"라고 했는데 친구랑 너무 똑같이 말해서 놀람)그 누구도 친구에게 그만 힘들어해라 말할 수 없죠. 어찌 감히 그런 말을 합니까.그래서 저는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가 지겹다 어쩌구 하는 사람들은 인간 취급 안 합니다. 얼마전 난리가 났던 스벅의 5.18 조롱도 마찬가지고요.불매운동 갖고 감정적이네 어쩌구 하는 사람들도 그 세 치 혀가 함부로 놀리는 말들로 업보 다 받을 거예요. 미국은 아직도 물건을 양쪽 높이 쌓아 진열하는 걸 조금 금기시한다고 합니다. 쌍둥이 빌딩을 연상시킨다고... 16년에 9월11일 추모일이 다가오는데 쌍둥이 빌딩 폭파가 떠오르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던 매트리스 업체는 엄청난 비난을 받고 무기한 영업 정지에 들어가서 결국은 문 닫다시피 한 걸로 알고 있어요.자식 잃은 부모 마음, 가족을 잃은 남은 유가족의 고통... 사람이라면 그 생각을 어찌 안 할 수 있나요.아이를 잃은 아이유가 행여 나쁜 생각을 할까, 동네 사람들이 내 일처럼 걱정해 주고 남몰래 부엌에 온갖 먹을 거리를 갖다 놓은 장면에서 정말 콧날이 시큰했어요. 사람이라면 그래야죠. 어찌 그만 말해라, 지겹다, 세월 지났는데 언제까지 울궈먹냐, 그 따위 말을 할 수 있나요. 자식의 죽음 앞에서 무너지는 연기를, 아이도 안 낳아본 아이유가 어찌 그리 잘하는지 넘 울었네요. 임상춘 작가는 예상과 달리 30대 여성 작가라고 합니다. 이제는 40대 전후겠네요. (베일에 싸인 작가라 정확한 나이를 아무도 모른다 합니다.)폭싹을 썼을 당시는 30대 후반, 잘해야 40대 초반이래요. 저는 꺾어진 반백년을 살고서야 간신히 깨달은 생의 이치가 너무 많이 나와서, 역시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은 다르구나 싶었어요. 샬롯 브론테도 <제인에어>를 썼을 당시가 기껏해야 30대 초중반인 걸로 아는데, 나이에 따른 위화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아이의 성장과 육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줘서 놀랐었는데...애순이가 너무 완벽한 엄마로 나오지 않아서 그 점도 좋았어요. 아이 잃은 엄마지만 또 쾌활하고 강인한 엄마기도 하고, 너무나 따듯한 엄마지만 자기도 모르게 편애해 놓고, 또 그걸 후회하고 반성도 하죠. 언제나 든든한 애순이 이모들은 등대지기처럼 발을 헛디디는 순간 길잡이 역할을 해줘요. 제일 연장자인 분이 애순이에게, "세상에서 제일 편한 게 자식이지. 그렇다고 함부로 하지 마라. 자식은 여린 잎과 같아서 가랑비에도 쉽게 찢어진다"고 하시는데 육아서 10권의 모든 말이 시처럼 한 문장 안에 농축되어 있어요.며칠에 걸쳐 폭싹 대장정을 마치고 여운이 안 가시네요. 남들 다 볼 때는 안 보고 뒤늦게 혼자 빠져 이러고 있습니다 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