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가장 크게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아내를 바라보는 시각이다.​직장에 다닐 때는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같은 집에서 살면서도 정작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깊이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퇴직 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요즘 아내가 많이 바쁘다. 원래도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최근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과 응급처치 교육을 하는 강사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학교에서는 안전교육이 의무화되어 있어 정기적으로 여기저기 학교에 다니며 강의를 진행하는데, 그런 날마다 아내는 아침 일찍 교안을 챙겨 집을 나서곤 한다.​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다. 평생 직장 생활을 한 나는 퇴직 후에는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 뿐인데,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온 아내는 오히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더 바쁘게 살고 싶어한다.​아이들도 모두 독립하고 나니 마음 한편에 빈자리가 생겼던 모양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고,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싶은 마음이 다시 살아난 것 같았다.​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살았던 시간​강의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에게 나는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한다."힘들지 않아? 얼마나 번다고 그렇게 고생해. 힘들면 그만둬."걱정하는 마음인데도 표현은 늘 이렇게 서툴다.​그러면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오늘 아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듣는지 몰라. 질문도 많이 하고, 수업 끝나고 와서 인사하는데 너무 예뻤어."그 표정을 보고 있으면 돈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생각해 보면 아내 역시 꿈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대학원까지 다니며 공부를 계속했고, 교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하지만 결혼 후 현실은 아내가 꿈을 펼칠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해외 파견 근무가 잦았던 남편을 따라 낯선 나라를 오가며 살아야 했으니, 취업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오히려 새로운 나라에 적응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가정을 꾸려가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했을 것이다.​국내에만 있었다면 학창 시절 친구들과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재밌는 추억의 시간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외 생활 속에서 아내는 늘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불렸다. 자기 이름으로 살아갈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았었다.​포기하지 않았던 작은 준비들​그런데 아내는 포기하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공부를 했다. 결혼 전에 취득한 교사 자격증은 물론이고, 캐나다에서는 영어교육 관련 자격을 취득했다. 귀국 후에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원 자격증, 생활안전강사 자격증, 응급처치강사 자격증까지 하나씩 준비했다.​당시에는 솔직히 의아하기도 했다."그걸 따서 어디에 쓰려고?"그런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내는 오래전부터 오늘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누구의 아내와 엄마로만 살았던 시간이 끝난 뒤, 다시 자기 이름으로 살아갈 날을 말이다.​이제는 내가 응원할 차례​요즘 나는 아내의 조수가 되었다.강의 교안을 보기 좋게 정리해 주기도 하고, 출강하는 학교에 제출할 이력서나 강의일지 같은 문서 작업도 도와준다.​그럴 때마다 나는 생색 내기를 잊지 않는다."당신 강의료에는 내 지분도 좀 들어가 있는 거 알지?"​그러면 아내는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알았어. 나중에 당신이 좋아하는 생선회 사줄게."​생각해 보면 아내는 오랫동안 가족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뒤로 미뤄두고 살았다.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가정을 지키는 일에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서고 있다.​오늘도 아침 일찍 강의를 위해 집을 나서는 아내를 배웅했다.아마도 교실에 들어선 아내는 밝은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할 것이다."안녕하세요. 여러분. 심폐소생술 강사 OOO입니다."​그 한마디를 듣는 아이들보다, 어쩌면 내가 더 뿌듯한 마음인지도 모르겠다.아내가 잃어버렸던 이름을 다시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