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회사에 반차를 내고 오래간만에 증권사 지점을 다녀왔습니다. 가족들 주식계좌 관리 문제로 직접 방문할 일이 생겼거든요.

지점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순간 낯선 기분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객장에 시황판이 돌아가고, 그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습니다. 누구는 한숨을 쉬고, 누구는 소리를 지르고, 그 자체가 하나의 시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정말 아무도 없습니다. 넓은 객장에 저 혼자 서 있으려니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군요.

지점 부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인연을 맺은 지 15년이 넘은 분이라 종종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입니다. 차 한잔 하면서 근황을 나눴는데, 첫마디가 "죽겠습니다"였습니다.

요즘같이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는 자기들 같은 사람도 죽겠다고 하시더군요.

"아니, 부장님 같은 전문가도 그러세요?"

이렇게 여쭤보니, 이런 변동성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나 코로나 때보다 더 심한 것 같다고 하십니다.

코로나 때는 위기이긴 했지만 변동성이라기보다는 폭락장에 가까웠고, 지금처럼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장은 정말 생전처음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출렁이는 장이 이어지니 마음이 피폐해진다고, 이러다 공황장애 오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시더군요.

ㅎㅎㅎ 웃으면서 하신 말씀인데, 웃음 뒤에 피로가 묻어 있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요즘 회사 분위기도 비슷합니다. 지수 등락에 따라 사무실 공기가 무슨 조울증 환자 같습니다.

오르는 날은 점심시간이 시끌시끌하고, 빠지는 날은 다들 말이 없습니다. 특히 올해 주식시장에 들어온 속칭 '주린이' 직원들은 안절부절못하는 게 눈에 보입니다. 모니터 한쪽에 시세창을 띄워놓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겁니다.

30년 넘게 시장에 있으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변동성 장세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시장 예측이 아니라 중심잡기라는 사실입니다. 시장이 어디로 갈지는 어제만났던 증권사 부장님 같은 전문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흔들리지 않는 방법은 내가 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중심을 잘 잡을 수 있을까요?

첫째는 시드 관리입니다. 지금 이 변동성이 견디기 힘들다면, 그것은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시드의 문제일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의 시드가 내 그릇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를 넘어선 것입니다. 같은 10% 하락이라도 1천만원 계좌와 5억 계좌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옵니다. 그릇이 감당 못 하는 시드는 줄이는 것이 맞습니다. 시드를 줄이는 것은 후퇴가 아니라 오래 살아남기 위한 조정입니다.

둘째는 종목 비중입니다. 변동성이 큰 종목을 포트에 너무 많이 담고 있지 않은지 봐야 합니다. 사실 S&P500이나 나스닥100 같은 지수에 투자하시는 분들은 지금 마음이 비교적 평온합니다. 같은 시장에 있어도 개별 종목, 그중에서도 변동성 큰 종목을 들고 있는 분들이 제일 힘듭니다. 지금이야말로 종목과 지수의 비중을 다시 정립할 때입니다.

셋째는 현금 보유 비중입니다. 주식은 일단 사고 나면 내가 '을'이 됩니다.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오르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요. 내가 '갑'의 위치에 서려면 현금이 늘 있어야 합니다. 지금 현금 비중이 넉넉한 분들은 시장이 빠지는 것이 오히려 기회로 보입니다. 같은 하락장인데 누구는 공포에 떨고 누구는 쇼핑 목록을 꺼냅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현금입니다. 지금 마음 관리가 안 된다면 현금 비중부터 다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넷째는 시세창을 보는 횟수입니다. 변동성 장세에서 하루에 수십 번 계좌를 열어보는 것은 스스로를 고문하는 일입니다. 장기 투자자라면서 5분마다 시세를 확인한다면, 그것은 이미 마음이 단기 투자자가 된 것입니다. 계좌를 보는 횟수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출렁임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결국 돌아보면 이 모든 것이 메타인지의 문제입니다. 내가 지금 제대로 된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시드가 내 그릇에 맞는지, 종목 구성이 내 성향에 맞는지, 현금이 나를 갑으로 만들어주고 있는지. 결국 시장을 아는 것보다 나를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변동성 장세는 고통스럽지만 한 가지 쓸모가 있습니다. 평온한 장에서는 누구나 훌륭한 투자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출렁이는 장은 내 투자의 민낯을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지금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것은 시장이 보내는 신호가 아니라 내 포트폴리오가 보내는 신호입니다.

무엇보다 주식투자 때문에 멘탈 관리가 안 되어 가정이나 회사생활,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면 절대로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분에게는 주식투자가 맞지 않는 자산투자 방식인 것입니다. 투자는 잘 살기 위해 하는 것인데, 투자 때문에 삶이 무너진다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니겠습니까?

텅 빈 객장을 나서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객장의 사람들은 사라졌지만, 흔들리는 마음들은 각자의 스마트폰 속으로 옮겨갔을 뿐이라고요. 시대가 바뀌어도 시장 앞에 선 사람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변동성 장세도 얼마 안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또 공포나 탐욕, 의심 속에서 새로운 장이 열릴 것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때까지 시장이 아니라 나를 붙들고 계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십시오.